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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 일월의 2019

    1월 27일은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해방된 날을 기념하여 UN이 2005년 지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는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수용소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천 개의 무덤, 기념물, 기념관과 함께 잔혹한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 강제 이송이 최초로 이루어진 날은 1940년 6월 14일이며, 강제 이송된 사람들은 폴란드 정치범이었다. 폴란드 내 독일 점령지역에서 폴란드인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기존 감옥에 자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에, 이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2년 후,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독일어: Endlösung der Judenfrage)’ 실행 거점 중 한 군데가 되었다. 이는 독일 점령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말살시키려는 나치의 계획이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는 약 백만-백 오십만 명이 살해되었으며, 그 중 백만 명이 유대인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폴란드 시민이었다. 독일과 추축국, 추축국 점령지에 위치한 수많은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다. 유럽의 여러 도시와 시골의 길거리, 게토에서도 처형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약 6백만명의 유대인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은 소련군이 폴란드에 입성한 후 1945년 1월 27일에 해방되었다.

     

    수백만 유대인의 죽음은 인류의 영원한 수치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후, 홀로코스트로부터 유대인을 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우리는 인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폴란드인들도 있었다. 폴란드 망명정부와 수천 명의 폴란드 시민들은 인류애가 이끄는 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내내 유대인들을 도왔다. 독일 점령 치하의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을 돕는 것이 적발될 경우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야드바셈 홀로코스트박물관이 지정한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중에는 폴란드인이 가장 많다. 또한, 폴란드 망명정부가 지원하던 ‘줴고타(Żegota)’ 라는 단체는 독일 점령 하의 유럽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특별히 설립된 정부 기관이었다.

     

    폴란드 외교관들도 유대인들을 구하는 데 함께하였다. 와도시(Ładoś)라는 단체의 활동 덕분에, 1942-1943년 동안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슬로바키아 및 다른 유럽 국가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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