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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조국 폴란드 공화국에 충성하겠습니다
  • 폴란드 소개

  • 폴란드의 지리적 위치

     

    폴란드는 유럽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바르샤바 근처가 사실 유럽의 지리적 중심인 것이다. 이 곳에서 노르웨이의 노르킨Nordkyn 곶과 그리스의 마타판Matapan 곶을 잇는 선과 포트투갈의 로카Roca 곶과 우랄 산맥의 중심을 잇는 선이 교차하는 것이다. 폴란드 영토는 총 312683 제곱킬로미터이며, 유럽에서는 아홉 번째로, 전 세계에서는 63번째로 크다. 현대의 폴란드 영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폴란드는 전쟁 전 영토의 20%를 잃었다.

     

     

    기후 환경

    폴란드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 사이의 온화한 기후이다. 이는 아틀란틱 해협 위의 습한 공기가 유라시아 대륙 깊숙한 곳의 건조한 바람을 만나며 형성되는 기후이기도 하다. 그 결과 폴란드의 기후는 매 계절마다, 해마다 변화무쌍하다. 특히나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습하면서도, 가끔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겨울 날씨에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보통 폴란드 북쪽과 서쪽 지역에는 춥지 않고 습한 겨울과 비가 많이 오는 찬 여름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며, 동쪽 지역은 매서운 겨울과 무덥고 건조한 여름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대륙성 기후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기온

    가장 따뜻한 달은 7월이며 평균 기온은 16-19도에 달한다. 7월에 가장 서늘한 곳은 산악 지방이다. 타트리Tatry지방과 수데티Sudety 지역의 산봉우리 지역의 평균 기온은 7월에도  9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발틱 해에 접해있는 폴란드 지역 역시 16도 정도로 낮은 기온을 보이며, 이는 차가운 해류의 영향 때문이다. 가장 따뜻한 지역은 폴란드 중부 지역으로, 일 평균 기온은 18도에 이른다. 25도가 넘어가는 뜨거운 날은 폴란드에서 5월부터 9월 사이에 볼 수 있는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그 일수가 많아진다.

    폴란드에서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대륙의 얼음 같은 바람으로 폴란드 동쪽 지역은 폴란드 전역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 된다. 이러한 기온의 차이는 폴란드 내에서의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며,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평균 기온 온도는 5도인데, 폴란드에서의 이러한 날씨는 연평균 200일정도 된다.

     

     

    4계절

    폴란드에서는 6계절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폴란드는 초봄과 초겨울이 매우 드러나는 편이다. 초봄은 약 한달 정도 지속되는데, 이때의 하루 평균 기온은 0도에서 5도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봄은 폴란드에서 약 60일 정도 지속되며 서쪽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 이때의 기온은 5도에서 15도 사이이다. 이때 폴란드 땅에서는 식물들이 생장하기 시작한다. 여름은 20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며, 폴란드에서는 5월부터 시작된다. 네 달 후 가을이 오면 기온은 15도에서 5도 사이로 떨어진다. 거의 매년 9월 중순쯤 아름다운, ‘바비에 라토 babie lato’기간이 찾아오는데, 따뜻하고 햇빛이 가득하며, 나뭇잎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이다. 10월 말이 되면 나뭇잎들은 모두 떨어지며 날은 점점 더 짧아지며 초겨울이 시작된다. 온도는 5도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6주 정도가 지나면 겨울이 오는데, 겨울은 매년 다르긴 하나 보통 2월-3월까지 지속된다.

     

     

    폴란드의 가장 따뜻한 지역과 가장 추운 지역

    폴란드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은 실롱스크 저지대 지역이며, 이곳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하에 있다. 난방을 하는 겨울 날은 60일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겨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온화하다. 여름은 해가 많이 들며 따뜻하고 100일 이상 계속된다. 7월의 평균 기온은 18.5도를 넘는다.

    폴란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은 수발슈취즈나 Suwalszczyzna 로 폴란드 북동쪽 지역이다. 기온만 놓고 보면 거의 먼 스칸디나반도 지역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네 달이 넘게 계속되는 건조하고도 긴 겨울 때문에 이 지역은 폴란드의 북극이라고 불린다. 겨울이면 기온이 매우 낮고, 여름은 따뜻하다. 수발슈취즈나 지역에서의 연평균 기온의 차이는 23도나 되며, 이는 산악지역보다도 더 높은 수치이다. 가장 추운 달,1월의 평균 기온은 폴란드에서 가장 낮으며 영하 5도보다 더 내려갈 때도 있다. 여름 평균 기온은 17.5도이다.

     

     

    구름과 강수

    폴란드에서 흐린 날은 60%에서 70%에 달한다. 흐린 날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은 11월이며, 가장 맑은 달은 8월과 9월이다. 연간 강수량은

     

    • 산악지역 – 800mm에서 1400mm
    • 저지대와 고지대 – 400mm 에서 750mm
    • 비슷한 수치의 강수량이 포모르스키에 호수지역 Pojezierze Pomorskie 과 마주르 호수 지역 Pojezierze Mazurskie 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여름에 비가 가장 많이 온다. 이때는 겨울보다 2-3배 많은 강수량이 관측되며, 카르파티 Karpaty 산악 지대에서는 네배나 더 많이 오기도 한다. 비엘코폴스카 Wielkopolska 동쪽 지역과 쿠야비Kujawy 지역에 특히 비가 많다. 지금까지 가장 비가 많이 온 것은 1973년 타트리 산맥의 할라 공시에니초바 Hala Gąsienicowa로, 하루에 30센티미터나 되는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

    폴란드는 동풍이 주를 이루는 지역 (바람부는 날의 60%는 동풍이다)에 자리하고 있다. 폴란드 동쪽 지방에서는 이 동풍의 영향이 더 커지며, 산에서는 남풍이 분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은 1년 내내 같은 쪽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여름인 7월부터 9월까지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주를 이루지만, 12월부터 1월까지의 겨울에서는 서풍의 영향력은 잦아든다. 폴란드에 부는 바람은 약하고 온화한 편으로, 2-10 m/s 정도이다. 바다에서 강풍과 매우 강한 강풍은 폭풍을 일으키며, 산에서도 30 m/s에 이르는 바람이 불 때도 있다. 하지만, 허리케인은 폴란드에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폴란드의 지형적 특성

    91.3%의 폴란드 영토는 해발 300 m n.p.m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폴란드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리시 로, 타트리산맥에 자리하고 2499m이다. 가장 낮은 곳은 라츄코 엘블롱스키에Raczko Elbląskie마을의 동쪽 지역으로 해수면 높이보다 아래인 -1.8m p.p.m이다. 세 개의 산맥이 폴란드를 가로 지르는데, 이는 카르파티 Karpaty, 수데티 Sudety와 시비엔토크쉬스키에 Góry Świętokrzyskie이다. 가장 긴 강은 비스와로 1047 km 이며, 폴란드에는 1헥타아르가 넘는 호수만 약 9300개가 있으며, 전 국토의 1% 를 차지한다.

     

     

    폴란드의 지역

    폴란드는 1999년 새로 지역을 분할하게 되었다. 16개의Województwo와 379개의 powiaty, 2478개의 gminy로 지역을 나눈 것이다. 가장 큰 도시들은 바르샤바Warszawa, 우츠 Łódź, 크라쿠프Kraków, 브로츠와프Wrocław, 포즈난Poznań,그다인스크 Gdańsk, 슈체친Szczecin, 비드고쉬취Bydgoszcz, 카토비체Katowice 및 루블린Lublin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은 포모졔Pomorze, 마주리 Mazury,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마조프셰 Mazowsze, 포들라시에 Podlasie, 실롱스크Śląsk, 마워폴스카Małopolska 와 포드카르파츠키에Podkarpacie 지역이다. 1990년 이후 폴란드 국경을 주위에는 13개의 에우로레기온 Euroregion이 생겨났는데, 이는 지자체들끼리의 법령에 근거하여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경제 협력을 꾀하며, 인프라를 함께 발전시키며 함께 환경보호를 하도록 노력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지역의 예로 포메라니아 Pomerania에는 폴란드, 독일, 스웨덴이 속해 있으며, 니사 Nysa는 폴란드, 체코, 독일 지역을 포함하고 있고, 카르파티 지역 Karpacki에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가 속해있다.

     

     

    폴란드 헌법

    헌법은 폴란드 규범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국가통치체제의 근본이다.  기본권과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며,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 간의 관계를 규정하며, 상·하원과 대통령, 행정부 수반등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의 조직과 역할을 결정하고, 사법과 지방자치, 국가 통제 기관 체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국가 행정 조직과 공적 자금 및 특별 사항도 조정한다.

    폴란드는 헌법주의에 있어 유럽의 선두적 역할을 하였다. 1791년 폴란드 의회는 유럽대륙에서 후에 5·3 헌법 Konstytucja 3 Maja 이라고 불리게 된 첫번째 성문헌법을 제정하였다.

    현재의 폴란드 헌법은  1997년 4월 2일 상·하원 연석회의를 통해 발의되어 같은 해 5월 25일 전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되었다. 1997년 7월 16일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Aleksander Kwaśniewski 대통령의 인가로 1997년 10월 17일부터 지금까지 그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

    1990년부터 1997년 사이에는 1952에 지정된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식 조항들을 변경시켰던 소헌법 Mała Konstytucja이 쓰였다.

    폴란드 헌법은 민주 국가의 기본인 시민권에 대한 존중을 보장한다. 자유와 개인의 권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등이다.

    헌법은 폴란드의 모든 국민에 대해 성과 인종, 국가, 직업, 지역과 교육 여부와 상관없는 평등을 보장하며, 자유와 불가침의 개인의 인권,, 주거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자유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 신체의 자유를 보장한다.

    헌법은 또한 사생활과 통신의 자유를 보장하며, 스스로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는 자유, 언어의 자유, 평화적인 집회 결사의 자유, 공무 담임권과 선거권, 공적 기관의 활동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한다.

    헌법은 또한 사적 재산에 대한 권리 및 유증에 관한 권리를 보호하며, 직업 선택과 직업의 자유, 안전한 근로를 보장받을 권리를 보호하며,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가지며 교육에 대한 권리(의무 교육은 18세까지)를 보장한다.  법령으로 또한 예술, 학문적 연구 및 전달에 대한 자유, 문화적 자산에 대한 이용의 권리를 보장한다. 헌법은 또한 가족과 어린이의 권리를 특별히 보장하고 있다.

    폴란드 법은 또한 폴란드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다. 기본적인 의무는 폴란드 국가에 충성할 것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가의 모든 기관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법령의 합헌성을 심판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이다. 폴란드 국민은 헌법의 침해에 대한 사항을 헌법 재판소에 청구하거나 제청할 수 있다.

    원문: http://www.polska.pl/Konstytucja,114.html

     

    폴란드의 상징

    국가 문장과 색, 폴란드 국가 및 도장에 대한 법령 1.에 의해, 폴란드의 상징은 흰 독수리와 흰색과 붉은색, 국가로는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렉 Mazurek Dąbrowskiego이다. 폴란드 국가의 상징은 특별법과 그 하위 사항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이 상징들을 경건함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폴란드 국민 모두와 국가 기관과 단체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국가 문장 – 법령 2는 폴란드의 문장은 황금관을 쓰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으며, 날개를 펴고 부리와 발 부분이 금색으로 된 흰 독수리의 그림으로 붉은 색 방패 안에 그려져 있다.

    국가 색 – 폴란드의 국가 색은 흰색과 붉은 색이며, 평행하게 나뉘어진 똑 같은 넓이와 길이의 두 줄 중 위 칸은 흰색으로, 아래 칸은 빨간색이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 이 국가 색을 세로로 걸 때에는 앞쪽에서 보았을 때 흰색이 왼쪽에 위치해야 한다.

    폴란드 국가 색은 폴란드 국기의 일부이다. 폴란드 국기는 폴란드 국가색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천으로, 깃대에 걸게 되어 있다. 국기의 가로 세로 비율은 5:8이다. 국기의 흰색 면 안에 폴란드 문장이 위치한 것 역시 폴란드 국기이다.

    원문: http://www.mkidn.gov.pl/pages/strona-glowna/kultura-i-dziedzictwo/symbole-narodowe.php

     

    폴란드 국가國歌의 기원

    이탈리아에서의 폴란드 용병의 노래 가사로 이후에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렉Mazurek Dąbrowskiego’ 또는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Jeszcze Polska nie zginęła’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노래는 1797년 7월 16일부터 19일 사이 당시 롬바르디아 공국의 레지오 넬’에밀리아 Reggio nell'Emilia (볼로냐 근처의)에서 지어졌다. 이 노래를 쓴 사람은 유제프 루핀 비비츠키 Józef Rufin Wybicki로 16세기부터 포모졔 Pomorze지방에서 살던 로갈Rogal 집안 출신으로, 본인은 벤도민 Będomin 출생이다. 유제프 루핀 비비츠키는 시인이며 극작가, 작곡가, 법률가, 외교관이면서 정치운동가로 바르 동맹의 일원이었으며, 코시치우슈코 봉기 powstanie kościuszkowskie 에 참가한 바 있다. 1797년 7월 롬바르디아에서  비비츠키는 얀 헨릭 돔브로프스키 Jan Henryk Dąbrowski장군과 함께 나폴레옹 보나파르테의 프랑스 군대와 함께 싸운 폴란드 용병을 조직했다. 이탈리아에서 폴란드 용병의 노래는 비비츠키가 레지오 넬 에밀리아를 떠나는 용병들의 환송 행사를 위해 써졌으며, 이 곳에서 처음 불려졌다.

    몇 주 후, 비비츠키는 밀라노에, 그리고 돔브로프스키 장군이 용병들과 볼로냐에 있을 때, 돔브로프스키 장군은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병사들이 자네의 노래를 점점 더 좋아하고, 나 역시 저자에 대한 죄스러운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리네.’ 같은 해인 1797년 이탈리아 북부 전역으로 흩어진 폴란드 용병들은 이 노래를 모두 알게 되었으며, 노래에는 인기 뿐 아니라 점점 더 새로운 힘이 더해졌다. 단지 군대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분할 점령국의 국경을 넘어다니는 밀사들의 힘으로 이 곡은 바르샤바와 크라쿠프, 포즈난과 같은 다른 도시들에 알려졌으며, 만들어진 지 겨우 몇 달 후, 자유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뿌리는 노래가 되어 있었다.

    후에 알려진 이름 대로, ‘돔프로프스키의 마주렉’는 폴란드인들이 나폴레옹과 함께 싸운 모든 전투에서 함께했으며, 1806년, 돔프로프스키 장군이 승리의 아우리와 함께 비엘코폴스카 지방에 나타났을 때도 불렸다. 이 곳에는 후에 장군의 부인이 된 바시아가 살고 있었다.

    바르샤바 공국의 시대에, 이탈리아에서의 폴란드 용병들의 노래는 이미 비공식적인 국가였다. 이 노래의 인기는 매우 높았고, 노래와 관련한 이야기들 역시 매우 유명했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러시아 차르의 동생인 콘스탄티 대공이 다스리게 된 새로 만들어진 폴란드 공국에서는 이 노래를 폴란드인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으나, 1831년 11월 봉기 이후,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렉’은 다시, 가장 인기있는 애국적인 노래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19세기 중엽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렉’은 새로운 국면을 맏이하게 된다. 슬라브족들 전체의 가장 중요한 노래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많은 다른 슬라브 국가國歌들의 원형이 되었다. 유제프 비비츠키가 쓴 유명한 대목인 ‘폴란드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았다 Jeszcze Polska nie umarła, kiedy my żyjemy’는 부분은 당시 세르비아인들, 체코인들, 우쥐체 인, 우크라이나 인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비슷한 성격의 노래들에 여러 번 차용되었다.

    그러나 거의 200여년 동안 폴란드 인들이 모두 궁금해하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폴란드인들이 국민적 상징으로 여기는 이 국가의 곡조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처음에 이 멜로디는 유명한 폴로네즈인 ‘조국과의 이별 Pożegnanie ojczyzny ‘을 작곡한 미하우 클레오파스 오긴스키 공 Michał Kleofas Ogiński가 썼다고 여겨졌으나, 이 주장을 반박할만한 옛 자료들이 나와 현재로서는 노래집의 편집인이나 학술적 연구에서 이 멜로디는 민요에서 차용했다고 표시하고 있다(거기에 어떤 사람들은 또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물음표를 넣기도 한다.).  또한 18세기에 폴란드에서 마주르는 귀족들의 춤이었으며, 민속춤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한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응용 예술, 당시 귀족들과 부유한 도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실용 음악에 속한다. (‘마주르’라는 단어 역시 18세기 중반 경에 처음 등장하였다.)  마주르라는 새로운 춤을 만들었던 것은 연극이기도 했다 (유제프 비비츠키는 연극 극작가와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여기서 연유한 춤이 귀족들의 저택과 도시의 살롱에 전파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유제프 비비츠키는 자신이 쓴 ‘아직도 폴란드는 죽지 않았다’라는 가사에 이미 자기가 알고 있던 멜로디를 작업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1842년 4월 26일 파리에서 슬라브 문학을 강의하는 도중 아담 미츠키에비츠 Adam Mickiewicz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명한 폴란드 용병들의 노래는 새로운 역사의 상징인 시로부터 시작한다. ‘폴란드는 죽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 말은,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민족이라면, 국가의 정치적 조건과 상관없이 자기 조국의 존재를 지속시킬 능력이 있으며, 그 국가를 새로 탄생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할 수 도 있는 것이다.’

    1978년 카슈비 지방의 벤도민에 위치한 유제프 비비츠키의 생가에는 ‘폴란드 국가 박물관 (그다인스크 국립 박물관 분점)’이 생겼다.

    원문: Wacław Panek, Hymny Polskie, Warszawa 1997

     

    국가 연주시 주의할

    아래 소개된 폴란드 국가의 모든 성악과 연주 버전은 카지미에슈 시코르스키 Kazimierz Sikorski교수가 만든 선율과 반주의 법적 버전과 일치한다. 성악 버전 (2성이나 3성, 또는 혼성 합창 등), 무반주 성악 버전과 피아노, 소규모의 악단 반주, 관악단의 반주 버전 등으로 연주 가능하다. 또한 기악 버전으로만도 연주 가능한데, 위의 성악 버전과 함께 연주될 수도 있다.

    소규모 악단이 연주할 때에는 연주 악기에 따라 곡 전체를 연주하지 않는 것을 허용한다. 또한 총보에 나온 악기가 없는 경우에 이를 음색과 스케일이 원래 악기와 비슷한 다른 악기로 대체 연주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피아노 대신 피아노와 음색이 비슷한 전자 건반 악기가 쓰일 수 있다. 관악기 일부가 없는 경우에는, 비슷한 스케일과 음색의 다른 악기 (예를 들어 아코디온, 클래식 기타나 일렉트릭 기타, 또는 건반 악기)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울림에 주의를 기울여, 원래의 국가 형태와 가장 비슷하게 연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법령을 제정하며, 위에 밝힌 것과 다른 버전의 멜로디나 화음, 악기의 사용은 국가의 연주에서 틀렸을 뿐 아니라 그렇게 연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폴란드 국가를 바르게 연주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이 국가의 아름다움은 폴란드 국민의 자부심이다.

    에드바르드 파와슈Edward Pałłasz

    원문: http://www.polska.pl/POLSKI,HYMN,NARODOWY,7059.html

     

    전통과 축일, 국경일

    폴란드인들은 축제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에 충실하며, 옛날의 관습을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제례들도 이미 옛날에 그 주술적인 성격을 잃었지만, 과거의 특색있는 유물로, 그리고 놀이의 요소로 전래되고 있다. 폴란드의 전통은 교회의 큰 축일들인  크리스마스, 부활절, 행렬이 조직되는 성심강림 대축일이나 모든 성인의 날 등에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또한, 종교적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로의 순례 역시 빈번한 편이다. 카톨릭 신자들은 야스나 구라 Jasna Góra에 위치한 촁스토호바의 수도원으로, 유대인들은 레쟈이스크  Leżajsk의 유대교 지도자의 무덤으로, 정교회 신자들은 그라바르카 Grabarka로 향한다.

    국가와 관련한 국경일을 보면 가장 중요한 날로는 1918년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은 기념일인 11월 11일과 1791년 폴란드 최초의 헌법 (유럽 최초이며, 전세계에서 두 번째의) 제정일인 5월 3일이 있다. 이 날들은 법적 공휴일이며, 행렬과 학술행사, 콘서트와 축제들이 치뤄진다. 폴란드에는 또한 다른 성격의 날들도 있는데, 3월 8일인 여성의 날, 5월 26일인 어머니 날, 1월 21일인 할머니 날, 6월 1일인 어린이날 등이다. 특히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많은 행사들이 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는 안졔이카 Andrzejka도 중요한 날인데, 이 날은 대림 이전에 마지막 놀이가 행해지는 날이며, 여기에는 다가올 새해에 대한 여러 기대와 점치기 역시 동반된다. 차가운 물에 뜨거운 촛농을 흘려보내 그 모양으로 운명을 알아 맞추는 점치기가 가장 인기가 있다.

     

    ► 5.3 헌법 제정일 Święto Konstytucji 3 Maja – 1791년 폴란드에서는 5. 3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근대 유럽에서 첫번째이고, 전세계적으로는 미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제정된 헌법이다. 헌법 제정 이틀 후, 대의회 (1788-1792)에서는 5월 3일을 국경일로 선포했다. 그러나 폴란드가 독립을 상실하여 오랫동안, 이 국경일은 지켜지지 못하였다. 1918년, 폴란드가 다시 독립을 되찾자 국경일로 다시 기능하게 되었으며 1946년이후 공산 정권은 이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경찰력으로 탄압하기도 했다. 1951년에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 이 국경일은 다시 1990년 5월 3일에 폴란드 국가 기념일이 되면서,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2007년부터 이 날은 5.3 헌법이 제정되던 당시 폴란드와 연방국가를 이루고 있던 리투아니아의 국경일이 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이 날에는 바르샤바의 피우수츠키 광장 앞의 이름모를 전몰 용사의 무덤에서 행렬이 행해진다. 군대의 행렬과 화포의 행진, 군장 교대식, 화환 증정식 도 있다. 이 날이 되면 다른 나라의 주요 인사들과 폴란드 각 분야, 군대, 교회, 외교, 국방 분야의 인사들과 스카우트, 수 천의 바르샤바 시민들이 지금까지 폴란드에 공적을 남긴 위인들을 기념하기도 한다. 5.3헌법 제정일은 흥겨운 공휴일이기도 하다. 폴란드 전역에서 봄맞이 행사와 음악회, 가족들의 소풍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수도 바르샤바 거리에서는 5.3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5킬로미터 마라톤 대회 Bieg Konstytucji 3 maja 가 열리기도 한다.

     

    ► 성모승천 기념일, 또는 폴란드 군대 기념일은 ‘비스와의 기적 Cudem nad Wisłą’이라고 불리는 1920년의 바르샤바 전투와 관련한 날이며, 8월 15일이다. 성모가 하늘로 승천한 날, 폴란드에서는 초록 성모의 날 Święto Matki Boskiej Zielnej이라고 불리는 이 축일은 폴란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의 축일이다. 이날은 약초와 작물, 야채, 꽃 등을 축성하고 바치는 관습과 관련이 깊다.  축성된 곡물은 집안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이날은 또한 법적 공휴일이다. 8월 15일 교회에서는  미사를 드리며, 쳰스토호바의 야스나 구라 Jasna Góra 에 있는 수도원에는 폴란드 전역의 순례자의 행렬이 몰려든다.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이 행렬은 십몇일이나 계속되거나 몇백킬로미터를 오기도 한다. 걸어서 야스나 구라까지 오는 순례의 행렬 외에도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타고 오는 순례 행렬도 있다. 이 날은 또한 폴란드 군대 기념일로, 폴란드 볼셰비키 전쟁 중, 1920년 8월 12-25일까지 있었던 역사적인 전투에서의 폴란드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 전투의 승리는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볼셰비키 식의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날 교회에서는 또한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위한 미사가 올려지며, 공동묘지에서는 이들을 기념하며 이름을 부르는 의식이 거행된다. 바르샤바의 이름 모를 병사의 무덤 앞에서는 정부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군대 교대식이 행해진다.

     

    ► 독립기념일은 폴란드가 123년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분할 점령을 벗어나 1918년 11월 11일 독립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폴란드 국경일 중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은 법적 공휴일이며, 많은 폴란드인들이 가족과 즐거운 휴식을 취한다. 1920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된 이 날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점령당한 폴란드 영토에서조차 몰래 기념되어왔다. 1945년에 이 공휴일은 1944년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 (PKWN)가 폴란드 민족에게 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7월 22일로 대체되었는데, 이 성명서로 사실상 폴란드는 공산주의체제를 들여온 것이었다. 원래의 독립 기념일이 되살려진 것은 체제 전환 이후인 1989년 이후이다. 국가 공휴일로서의 승격은 1937년에 있었지만, 제2폴란드 공화국 시절에도 이 공휴일은 매우 성대하게 치워졌다. 거리에는 멋지게 차려 입은 군대의 행렬이 이어졌으며, ‘독립 폴란드의 아버지’ 라고 불리던 유제프 피우수츠키 Józef Piłsudski 원수가 행렬을 맞이하곤 했다. 89년 이후부터 이 독립기념일은 폴란드인들의 가장 큰 국경일로서 치뤄지고 있으며,  거대한 행렬이 행해지는 곳은 제2 폴란드 공화국 시절에도 정부 각료들이 모여 큰 행사를 치루고, 군대의 인사 행사를 거행하던 피우수츠키 광장이다.

    많은 폴란드인에게 이 날은 역사적인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날이자, 애국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날이다. 군대의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고, 흰색과 붉은색으로 되어 ‘Polska’라고 써 있는 모자를 쓰기도 하며, 아이들은 얼굴에 작게 국기를 그린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날 국가를 위한 미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폴란드인들은 또한 공휴일을 활동적으로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공휴일을 맞아 조직되는 여러 달리기 대회들이 있는데 바르샤바의 유명한 독립기념 달리기 대회 Bieg Niepodległości 에는 참가자가 만명이 훌쩍 넘는다. 1989년 이후 독립 기념일 행사들은 매우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몇 년 전부터,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대통령 Prezydent RP Bronisław Komorowski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폴란드 인들이 이 날을 엄숙하지만, 흥겹게 지낼 것을 장려하고 있다. 독립과 모국어, 폴란드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향한 몇 세기 동안의 싸움에 승리한 폴란드인들은 이제야 자유를 기뻐하고, 자신들의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문: www.polsk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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